훈육의 완성 앞에 선 포즈들
최봉림(사진평론가, 작가)

강재구의 <12mm>는 ‘정상적’ 남자라는 심리적 안정성과 국민으로서의 도덕적, 법률적 합당성을 얻기 위해 ‘12mm’로 머리를 자르고 군이 행하는 강제 훈육 앞에 선 장정군(壯丁軍)의 초상이다. 완전한 군 규율의 습득과 훈육의 완성을 향해 통과의례를 거치는 신병들의 기념사진이다. 군 훈육이 남긴 일종의 정신적 충격과 그 과정이 각인한 육체적 효과를 기념사진의 형식으로 드러내는 사회적 초상이다. 그렇다면 강재구는 무엇을 통해, 어떤 형식으로 그 훈육의 효과들을 가시화하는가?
작가는 모델의 위치와 자세 그리고 의식에 부합하는 복장을 요구하는 일반의 기념사진과는 달리, 모델들에게 그 무엇도 요구, 통제하지 않는다. 기념사진에 익숙한 젊은이들이 스스로 자신들의 포즈를 연출하도록 내버려둔다. 작가는 다만 적절한 배경과 촬영의 순간, 주변 인물들의 수를 결정할 뿐이다. 배경은 훈련소 막사 앞일 수도 혹은 그 주변 시설일 수도 있고, 주인공은 담배를 피우거나 혹은 애인을 감싸 안을 수도 있다. 그리고 홀로 찍은 쓸쓸한 입영사진일 수도 혹은 왁자지껄한 송별 사진일 수도 있다. 그리하여 작가는 군 훈육 앞에 선 젊은이들의 여러 반응들을 보여준다. 군 훈육에 길들여질 것 같지 않은 행태로부터 이미 훈육된 부동자세에 이르기까지 입영 앞에 선 다양한 포즈들을 포착한다.
작가가 이번 작업을 위해 2매1조, 3매1조, 폴립티크 등의 형식을 택한 것은 오직 ‘12mm’와 20대라는 것 외에는 별다른 공통점이 없는 여러 다양한 청년들이 군 훈육을 통해 동질화되는 과정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다시 말해 시간의 순서에 따른 이미지의 병치를 통해 작가는 ‘삐딱한’ 혹은 자유분방한 태도의 장정군들이 군 훈육을 통해 ‘옳은’ 혹은 획일적인 자세로 변해 가는 과정을 기록함으로써 군대가 부과한 신체적 효과를 부각시킨다. 흐트러졌던 손은 일반적으로 가지런히 주먹을 쥐고, 자유분방한 자세와 어정쩡한 표정은 이제 정면을 ‘바르게’ 응시하는 포즈로 대체된다. 작가가 기록한 촬영일시를 보면 군 훈육의 효율성에 놀라게 된다. ‘좋지 못한’ 태도를 교정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한 달 혹은 석 달이면 충분하다. 신병의 신체는 군의 필요성에 맞춰 빠르게 훈육된다. 불안한 시선은 사라지고 표정은 확고해진다. 연약함은 강인함을 향해간다. ‘노석민 22살, 2011. 11. 26’을 보라. 문신을 했던 삐딱한 ‘노석민 22살 2011. 08. 22’은 3개월의 군 훈육을 통해 이제는 예쁜 강아지를 사랑하는 애인을 세찬 바닷바람 속에서도 의연히 보호하지 않겠는가?
효율성에 의거하여 면밀하게 작동하는 군 훈육은 다음 세 가지를 목표로 삼는다. 첫째는 전투를 위한 강건한 육체, 둘째는 복종하는 의식의 완성, 셋째는 집단에 헌신하는 배타적 도덕성의 함양이다. 그리하여 군대의 훈육 메커니즘은 그 경제적 효율성, 조직 관리의 유용성 때문에 국가, 기업, 학교 심지어는 동아리의 운영에도 직간접적으로 적용된다. 더 나아가 군 훈육의 목표는 사회인의 덕목으로도 연결된다. 군복무는 건강한 노동의 덕목인 인내, 예절의 덕목인 순종, 조직의 덕목인 충성심을 ‘철없는’ 젊은이들에게 ‘제대로’ 가르치기 때문이다.
훈육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군대는 다음의 원칙들을 준수한다. 첫째는 양도할 수 없는 엄격한 위계질서를 원칙으로 삼는다. 둘째는 훈육의 성취도에 의거한 상벌원칙이다. 마지막은 격리의 원칙이다. 이 고립을 통해 군은 그 구성원들에게 획일적인 공동체 의식, 배타적인 집단의식을 주입시키며 그들 신분의 특수성을 세뇌한다. 항상 예외 없이 실행되는 이 세 가지 원칙들은 몇 가지 물질적 요소들에서 군 훈육의 효율적 동력을 얻는다. 첫째는 일종의 감금과 폐쇄 속에서 항구적 감시와 통제를 가능케 하는 훈련소라는 교육 공간이다. 훈련소는 자유방임적인 장정군을 가두어 길들이고, 나약한 육체와 정신을 조련하는 김나지움이다. 두 번째 물질적 요소는 ‘12mm’의 두발과 군복이다. 이 두 요소는 징집병을 강력하게 구속하고 통제하는 신체의 외피로, 정신과 외모를 평준화시키며 구성원의 존재 이유를 통일시킨다. 12mm에 맞춰 머리를 자르고 훈련소에 호출되는 순간 그리고 군복을 통해 군인으로 호명되는 순간, 청년은 머리, 복장을 통해 드러냈던 자신의 개성을 삭제하고 자신을 훈육과 감시의 대상으로 인식한다. 따라서 강재구의 입대 전/후의 연속 사진은 군 훈육과정을 통해 한국 젊은이들이 겪는 정체성과 주체성의 위기를 극명하게 대비시키는 기능을 수행한다. 그리고 숨은그림찾기 식으로 또 다른 사진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폴립티크 ‘이영식 유인상 이재혁 이호규, 20살, 2011. 10. 24’, ‘이영식 유인상 이재혁 이호규, 20살, 2011. 11. 30’, ‘유인상 이영식 이호규, 20살, 2011. 12. 05’, ‘이호규 유인상, 20살, 2012. 01. 03’이 보여 주듯이, 이재혁의 입영과 그의 친구, 이영식의 또 다른 입영, 이영식를 환송한 이호규의 새로운 입영은 한국 병역의무의 강제성, 필연성 그리고 끝나지 않는 반복성을 선명하게 시각화한다.
강재구의 <12mm>는 훈련소를 배경으로 전개되는 한국의 고유한 성년식 장면이다. 입대에서 이등병에 이르는 ‘군바리’의 과정을 병영 밖에서 종교적 통과의례처럼 재구성한 작업이다. 장정군은 유대교의 할례 혹은 불교의 삭발과 유사한 12mm의 이발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한다. 그리고 고독과 불안으로 점철된 훈련을 마치면서 ‘철없는’ 자아를 탈각하고 인내하는 육체와 초월적 국가정신에 헌신하는 자아의 탄생을 ‘바른’ 시선과 자세로 통보한다. 나, 나의 친구, 친구의 친구로 이어지는 이 고통의 통과의례는 분명 한국 사회의 특이한 서열규범, 예의범절, 집단의식의 토대를 형성한다. 사회조직의 보편적 운영원칙으로 적용되는 군 훈육은 민주주의의 도래, 개인주의의 발현을 억압하면서, 한국 경제의 효율적 발전에 음으로, 양으로 기여했다. 강재구의 2012년 <12mm>의 작업이 입증하듯이, 군 훈육의 효과는 민주주의가 도래하고 개인주의가 모든 세대의 생활원칙으로 자리 잡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계속되는 듯하다.
그러나 군 훈육의 취약성, 허구성을 지적한 것도 작가, 강재구이다. 2004년에 전시했던 <예비역>은 군 훈육의 시도들이 결코 완성에 이를 수도, 지속적일 수도 없음을 보여줬다. <12mm>의 연속 사진이 드러내는 동일인의 포즈 변화와 <이등병>의 완벽하게 길들여진 신체는 군 훈육이 얼마나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 증명했지만, ‘예비역’들은 한결같이, 작가의 말처럼 “군복이라는 획일화되고 조직적인 복장 안에서 자신만의 색을 보여 주면서” “군에 대한 작은 반항심들을 그들만의 스타일로 나타”냈기 때문이었다. ‘자신만의 색과 반항심’은 군의 훈육체계를 지탱하는 규율들, 즉 복종하는 의식과 집단에 헌신하는 의식을 내부로부터 허무는 강력한 요소들이다. 강재구의 사진적 증언을 액면 그대로 믿는다면, <12mm>에서 시작한 군 훈육의 효과는 <이등병>에 이르러 정점을 향하고, <예비역>에 오면 분명한 하강국면에 들어선다. 그러나 군 훈육을 깔보지 말기로 하자. ‘예비역’의 조련은 군 훈육을 벤치마킹한 직장연수, 근무평가, 생활기록부를 통해 지속적으로 행해지고, ‘예비역’이 아닌 다른 곳에서 그 완성을 이루려 하기 때문이다. 회사의 번영과 성공적인 대학 진학과 아들의 출세를 위해,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아 훈련소의 훈육을 결코 잊지 못하는 한국의 어른들은 ‘예비역’이 끝나도 부하직원, 제자 혹은 자식을 ‘군대식으로’ 훈육하려 들기 때문이다. 따라서 군 훈육은 징병제를 통해 ‘철없는’ 청년들을 ‘올바르게’ 교육시키면 그 의무를 완수하는 것이 되는 셈이다. <12mm>에 등장하는 장정군들처럼 ‘제대로’ 교육시키면, 그들은 훗날 ‘예비역’에서 실패한 훈육의 완성을 그들의 직장과 가정에서 지속적으로 모색할 것이기 때문이다.